Search Results for '살아가기, 생각하기'


409 Posts

  1. 2010/08/25 개인의 역사 by daybreaker
  2. 2010/08/11 2010 여름 근황 by daybreaker (1)
  3. 2010/06/23 두 세계의 만남 by daybreaker
  4. 2010/06/21 지적사춘기의 끝 by daybreaker
  5. 2010/06/05 2010 6.2 전국동시 지방선거 by daybreaker
  6. 2010/04/04 소프트웨어와 경영 by daybreaker (6)
  7. 2010/02/20 예수전 by daybreaker (2)
  8. 2010/02/12 어제 오늘 들은 이야기 by daybreaker (4)
  9. 2010/01/26 표현하기 by daybreaker
  10. 2010/01/24 두려움 by daybreaker (4)
  11. 2010/01/22 뒤늦게 올리는 아바타 감상 후기 by daybreaker
  12. 2010/01/11 2009년 결산 by daybreaker (2)
  13. 2009/12/13 Sarah Chang's Violin Recital by daybreaker (2)
  14. 2009/12/12 장기하 1집 마무리 공연 by daybreaker
  15. 2009/11/15 신종플루(H1N1 Influenza) 경험담 by daybreak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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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사

가끔 집에 왔다가 TV에서 하는 버라이어티 쇼 같은 걸 보면 연예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요번에 본 것 중에는 송대관의 첫날밤 이야기가 있었다. 첫날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냈나 퀴즈를 냈는데,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낚시터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밤에 비가 오자 낚시터 근처 논밭에 세워져있는 추수 끝난 볏짚더미로 가서 안을 파내고 움막처럼 만들어 거기서 열렬한 밤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이거 완전 소나기인데’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역사라는 말은 뭔가 거대한 담론이나 흐름(시류, 조류, 대세 따위로 표현되는)의 느낌을 주지만,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각 개인들도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앞의 송대관씨 첫날밤 얘기처럼, 평범할 것 같은 와중에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삶이 곧 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번은 연구실 선배가 요세미티 공원 산행하다 겪은 삽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정말 그렇게 끔찍한 여행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다고 한다. 휴가 둘째날 부모님과 함께 삼겹살 구워먹고서 연락을 받고 아버지 친구를 함께 만나러 나갔었는데, 그곳 술집 사장님 말씀 중에 ‘나이 오십을 먹으면 사람 얼굴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한 것 아닐까? 같은 것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지만, 어쩌면 사람 얼굴을 봤을 때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구나 하는 건 다들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단순하고 평화로울 수 있고, 육체적으로는 편한데 정신적으로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듯이, 각 개인의 삶이 가진 다양한 모습들을 겉으로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면도 또한 있다.

스팍스 동아리 선배 중 한분이 얼마 전 갑자기 장문의 메일을 돌리셨다. 졸업 후 3년 넘게 회사 다니시다가 홍대 앞에서 아는 사람과 함께 술집을 차려서 동업하다가는 갑자기 인도에 3개월 동안 다녀온다며 이후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분처럼, 이따금 ‘이런 과정을 밟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겠지’하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다들 너무 쉽게 하지만, 막상 그러기는 쉽지 않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보이는 것 같다. 스웨덴 교환학생 다녀오면서 얻은 것 중 하나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그냥 막연히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일종의 자신감이자 기대감이었다.

다들 자기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도 그만큼 특별하다고 느끼게 될 때—여기서 특별함은 인도주의적 소중함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뜻한다—사람을 좀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는지.

2010/08/25 04:08 2010/08/2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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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여름 근황

개장 휴업 상태인 블로그를 어떻게든 RSS 리더에서 삭제당하지 않도록(…) 만들어보고자 언제나 할말 없을 때 하는 근황 포스팅. 최근 뭘 하며 지내나 한번 적어본다.

연구!

대학원생이니 당연히 일순위는 연구다. “연구”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형식 상 연구라는 걸 하고는 있다. (…)

첨단망 연구실(그렇다, 한글 이름은 이렇게 생겼다.)에 들어오고 어언 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이중에서 약 두 달 동안의 탐색 기간을 거쳤다. 현재는 선배들의 올해 SIGCOMM 논문으로 나간 PacketShader의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서 하는 것이 메인이고, 사이드로는 트위터 및 소셜네트워크 분석 관련 프로젝트 미팅에 계속 참석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어나가고 있다. PacketShader의 후속 연구로는 SSL/IPSec 기능을 GPU로 가속하는 것과 이것을 실제 라우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control plane을 통합하는 것이 함께 진행 중이다. 전자는 이번에 SIGCOMM Poster로 발표될 예정이고, 나는 후자에 참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쪽으로는 네트워크 구조로부터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그 dynamics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데, 물리학과의 정하웅 교수님 연구실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서울대 사회학과의 장덕진 교수님이나 사회발전연구소 이원재 박사님 등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해온 소셜네트워크 분석으로부터 얻은 통찰이나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매우 큰 규모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구축할 때의 시스템 이슈들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아직 알아야 할 것이나 논문을 읽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어 아마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작 그때 가면 다른 주제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옛날부터 큰 규모의 코드 덩어리를 보며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해왔기 때문에—학부 성적을 봐도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시스템 개발에 더 가까운 PacketShader 프로젝트를 우선 메인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해보고 느낀 점이라면 학부 때와 달리 스스로 찾아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에서는 돈이라는 강력한 동인이 눈앞에 놓여지는 데 비하여(내가 직접 받는 월급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이걸 하면 회사가 얼마나 벌 것이다 하는), 그야말로 학문적 호기심과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는 것이 말은 멋있지만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마련해놓은 정답이 없을 때 스스로 찾고 또 찾는(그래서 re-search일 것이다) 그 과정… 아직 나는 본격 시작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선배들이 그런 과정을 겪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니 생각만 하던 것과는 또 다르더라.

약간 번외의 이야기인데, 연구를 하면서 오픈소스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세상에 리눅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스템 연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지금처럼 여러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누구나 소스코드를 보고 고치고 다시 배포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은 정말 인류 역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다. 앞으로 백년, 이백년이 지나면 오픈소스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되고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자못 궁금하다.

성가대

연구 다음으로 활발히 하는 것은 얼마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성가대다. 성가대에 처음 들어간 것은 벌써 8주 정도 되었는데 중간에 청년캠프 등으로 예비단원 교육이 미뤄지는 바람에 지난 주말에서야 6주짜리 예비단원 교육을 완료하고 정식단원이 되었다.

중학교 때 심한 변성기를 겪으면서 사실상 노래가 불가능한 상황을 몇 년 겪은 후로 내가 노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학부 때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들으며 아카펠라에 테너 파트로 참여하면서 노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은근히 마음 속에 남아있었는데, 요즘 자주 치지 못하는 피아노를 대신하여 내 음악적 욕구를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동시에 내 삶의 중심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느님 안에서 두 배의 기도라 불리는 성가로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 또한 매우 큼은 물론이다.

성가대를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그냥 일반 신자로 미사만 다닐 땐 몰랐던 것으로, 하나의 미사를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봉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가대 연습이 미사 전 2시간 넘게 이어지는데, 처음엔 성가대밖에 없지만 한두 사람씩 미리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전례부와 복사단이 기도하며 미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 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댓가 없이 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내적인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세상적 기준으로는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과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끔, 너무 덥다든지 악천후가 이어진다든지 연구실 사람들하고 게임(…)에 말린다든지 하면 성가대 가는 것이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일단 가면 정말 그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꽉 찬 시간이 되는 것이 참 좋다.

지난 토요일에는 성가대 내부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랑님이 사는 곳이 내가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낸 개포동 5단지인지라(!) 개포동성당에서 혼인미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성가대의 큰 행사인만큼 축가도 부르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회의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의 순수한 신앙생활과 첫영성체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15년 전의 기억으로 멈춰있던 곳이 갑자기 현재의 기억—현재의 시간과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포함하는—으로 전이하였다.

내가 성가대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엔 결혼하신 두 분과 친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축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여기서 ‘가장’이라는 것은 외적으로 결혼식 때 가장 많은 치장을 하고 가장 젊고 활기찰 때의 모습이라는 점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축복을 받는 자리로서 그 자리에 선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지만 삶을 가꾸어갈 사랑을 통해 다른 의미로 더욱 아름다워질 앞날에 대해 가득 찬 기대감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의 최상급이다.) 축가 전주 동안 신부가 신랑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긴장한 탓에 가사를 틀려가면서도 끝까지 눈물 글썽이며 1절 부르는 모습을 보고 2절을 이어부르는데 괜히 나도 눈물이 났다. 이런 경험도 성가대가 아니었으면 해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텍스트큐브

여러 이유로 니들웍스 멤버분들이 다들 적극적인 참여가 힘든 상황이 되어 그럭저럭 유지는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실 그동안 블로그 저작도구라는 틀 안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상당 부분 다 해봤기에, 새롭고 흥미로운 것보다는 유지보수나 리팩토링과 같이 상대적으로 지루한 작업들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건 아무래도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니들웍스의 다음 프로젝트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보고, 앞으로 니들웍스와 태터네트워크재단이 나아갈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달 21일에 열리는 제8회 태터캠프는 ‘미래’를 주제로 비교적 소수의 인원을 모아놓고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할 수 없지만—또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해서—어쨌든 텍스트큐브를 통해 나름대로 인류와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텍스트큐브 프로젝트는 내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강한’ 사람들 여럿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사람들 틈에 끼어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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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1 02:23 2010/08/11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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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의 만남

때로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낳기도 하지만, 결국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한 세계는 고독하다. 인류가 끊임없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현대에 와서는 외계생명체를 찾으려 하고 우주로 탐사선을 보내는 것처럼, 세계는 다른 세계를 찾아 헤매인다. 그것은 어떤 한 세계가 어느 정도의 발전 단계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세계와의 만남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두 세계가 만났을 때 서로가 온전하게 남은 채 융화될 수 있을까. 전쟁과 정복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듯 한쪽 또는 양쪽을 파괴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 발생한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호킹이 경고했던 생물학적 장벽과 같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의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만남과 이별의 모든 과정에서, 두 세계가 의사소통하는 프로토콜이 다르다면 더욱 힘들고 어렵고, 의도와 다르게 두려움에서 기인한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고 또 헤어졌을 때, 이미 그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가 아닌 것 같다. 그 흔적을 지우고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고통스럽고, 그 세계는 이미 그 과정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과정을 처음 겪는 세계는 열병을 앓은 것처럼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거기에 참여했던 두 세계는 내연이 더 강해지고, 조금 더 아름답고 멋진 다른 세계들을 만났을 때 보다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본다.

단, 한쪽을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정복했다면 그 세계는 외연은 강해지겠지만 내연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상호 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뭇 종교들이 사랑을 강조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시적 스케일에서 거시적 스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의 만남은 결국 그 근원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음이어서가 아닐까.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고, 그 욕구의 정점은 사랑과 맞닿아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지적 사춘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인생의 유년기 다음에 한 인간으로서의 사춘기는 이제 겨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세계다.

2010/06/23 21:26 2010/06/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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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사춘기의 끝

요즘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궁동 성당 청년성가대에 들어가기로 했다. 본문에서는 뒤에 나오지만, 혹시 제목에 나온 지적사춘기에 대한 시발점이 궁금하시다면 이 글을 먼저 보면 도움이 될 듯. (그러고보니 우연의 일치인지 정확히 만 3년 만에 쓰는 글이다. 허허.)

오늘 청년회식이라 하여 성당에서 청년미사 후에 단체로 성당 마당에서 야외 고기파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전에도 청년회식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보통 사나래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힘들게 준비한 식사에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좀 그럴 것 같기도 했고(사실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고기 자체가 땡겨서 간 건 아니었다), 성가대에 오랜만에 아는 형(실제론 같은 나이지만—빠른 87—어쩌다 이렇게 굳어졌다. 학부 입학 전 꽃동네에서 함께 봉사활동하다 알게 된 나름 오랜 인연이 있다)도 나왔길래 인사도 좀 하고 사나래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좀 할까 해서 겸사겸사 들렀다.

그러다가 성당에서 이런저런 활동하는 사람들이 마니또가 되어 성당에는 오지만 활동이 없는 사람들을 보살펴주기 위해 공개추첨 형식으로 마니또를 뽑았는데 내가 뽑은 종이에 적혀있던 사람은 전자과 선배였다. (의외로 궁동 성당엔 학부생 이상으로 대학원생의 활동이 많다.) 이분으로부터 성당 봉사활동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이 갑자기 동하여 성가대에 들게 된 것이다.

내가 궁동 성당에 다닌 건 학부 1학년 때부터니까 벌써 6년째다. 중간에 교환학생과 휴학으로 없었던 기간 빼고 봐도 5년을 꽉 채우고 있으니 나름 정도 많이 든 성당이다. (교적이 있는 동네 성당보다 여기가 더 정들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가톨릭 학생회인 사나래에 나름 발도 걸치고(?) 있다. 카이스트에 6년이나 있었으니 이미 성당에서도 웬만큼 아는 선후배들이 많이 있고, 그중에 또 상당수가 성당에서 전례부, 복사, 성가대, 성소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발을 담글(?)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학부 때는 집에 자주 갔었고 가족들과 미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동네 성당이든 궁동 성당이든 한쪽에 고정적으로 활동하기가 모호했다는 점이 가장 컸고, 또 나름의 지적사춘기를 겪으면서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녔지만, 그것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위안을 위한 면이 더 많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내 마니또 분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최종적으로 ‘과학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됨에 따라—또한 주변 사람들의 많은 기도 덕분이기도 하지만—20대 초반, 학부 재학 기간을 통해, 삶에서 궁극적으로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도(혹은 그 여부를 알 수 없어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고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 나의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지적사춘기의 결과로 내 자신이 스스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한 결정에 큰 동기가 되었다. 내 스스로 인간임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를 나의 가치 체계와 사고 체계 안에서 그 필요성과 필연성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고, 여기에 예수님이라는, 사랑하고 회의하는 인간을 통해 집대성된 기독교 교리가 나의 가족문화적 배경1에 자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개인적 신앙뿐만 아니라 단체와 봉사활동을 통한 신앙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산학도이자 대학원생으로서 전문 분야에서 항상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서도,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타날 정신의 황폐화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신앙생활에서 말이다. 게다가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이후 연애라는, 현실에서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다른 의미로 느끼게 되었고, 그냥 미사 열심히 나가는 것에서 뭔가 다른 차원의 관계 형성을 해보고 싶어졌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방식의 신앙생활을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는 식으로 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점 또한 이해하고 있다. 결국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같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큰 지향점은 같아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고, 인간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느님의 교리 그 자체가 무결하여도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그것을 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는 항상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성서 공부를 좀 해야 할 듯. 다행히 어머니가 성서 교육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오고 계시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조금 번외의 이야기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취하는 입장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고민을 좀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좀 현실적인 이야기로 내려와서, 실질적으로 성가대 활동을 하고자 한 이유 중에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싶기 때문인 것도 있다. 물론 카이스트 사람들이 꽤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혀 다른 학교·전공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신앙과 봉사활동이라는 틀에서 만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사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은혜받는다고 느끼는 시간이 성가 부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기 때문에 반주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노래 그 자체도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내게 충분한 감흥을 주는 활동이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엔 변성기가 너무 심하게 와서 노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노래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에 들어온 이후 1학년 때 실내악 앙상블 수업에서 아카펠라 공연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면서 내가 노래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한몫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는 대중가요를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거의 안 들어서 아는 노래가 워낙 없기 때문에 노래방 가는 건 딱 질색이다. ㅋㅋ)

뭔가 성가대 한번 들어가려고 글 참 거창하게 쓴다 싶기도 한데, 단순히 성가대에 들어가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내 삶의 단계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함께 정리하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궁동 성당이라는 축복 받은 환경과 신앙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적사춘기를 끝내고—그렇다고 이것이 회의의 끝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행해야겠다.


  1. 한때는 이러한 가족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결론내려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과정을 위해 소모해야 할 에너지를 생각하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더 높은 차원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라는 사람이 뭐랄까, 자아가 더 강하고 완고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회의의 끝까지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맘먹고 하자면 할 것 같은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천성 탓일까. 

2010/06/21 01:46 2010/06/21 01:46

2010 6.2 전국동시 지방선거

젊은층 투표율이 올라가고 인터넷 여론이 실제 여론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기존 선거와 확실히 달랐다. 지역색이 엷어지고 세대와 계층간 투표 성향이 뚜렷하게 갈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서울은 강남구·서초구·송파구·강동구의 지지 성향이 이 정도로 분명하게 다르다니 정말 놀랬다.

내가 참여해본 선거로는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제17대 대통령선거였고, 이듬해 있었던 제18대 국회의원 총선의 경우 스웨덴에 교환학생 가있던 관계로 투표할 수 없었다. 여러 의미로 이번 선거는 내겐 특히나 소중한 투표권 행사였다. 부재자투표를 신청했다가 서울에서 하는 워크샵 때문에 못하고 당일날 투표하기 위해 집에 갔는데, 기차 날짜를 잘못 예약하질 않나 투표소에서 봉함용봉투와 투표용지 말고 겉봉투도 가져와야 한대서 선관위에 전화해 확인하는 등 온갖 역경(…)을 헤치고서야 투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ㅋㅋ

내 개인적으로는 각 정당에 대해 다음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했다.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 비교적 많은 인재들을 가지고 행정력이나 일 추진력은 좋은 것 같지만, 경제성장을 외치며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실상은 그네들만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을 많이 보이고 있고, 민주당은 일단은 진보라고 쳐주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의미의 진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해있는 것 같지도 않은 모호한 상태이고,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문제와 입장 대변에 너무 집중하여 다른 큰 문제들을 잘 못 보는 것 같고, 국민참여당은 일단 ‘노무현 정신 계승’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잘 모르겠고, 진보신당은 젊은층들에게 맞는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잘은 모르겠는… 그런 상태였다. 다만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에 대해 극과 극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주변에서 볼 수 있었는데, 유시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당대의 지식인으로 인정하며 아주 좋아하는 반면 그의 날카로운 인상이나 과거 행적을 두고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한다면서 싫어하는 사람은 또 아주 싫어했다.

구체적으로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밝히진 않겠지만, 나는 특정 당을 무조건 찍은 게 아니라 일부러 좀 섞어서 찍었다. 여당이 독주해도, 야권이 독주해도 둘 다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기하게도 선거 결과는 이러한 내 투표 경향과 거의 일치하게 나왔다. 여당에 대한 전통적인 지지표와 부동층으로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견제표가 함께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당과 야당이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회를 각각 장악함으로써 생기는 불협화음과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쪽에서 다 가져가버리면 비리와 부패가 심해지고—그 본보기로 서울시의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적절한 견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의 효율성을 희생하더라도 나는 이런 체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도 앞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 추진이나, 전임자가 진행하던 정책들을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는 행정을 피하고, 정말 서로에게 대한 건설적인 토론으로 일을 하면 좋겠다. (다만 아쉬운 건, 현재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제도적 틀 안에서 토론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투쟁해야만 했던 시대를 겪다보니 그러한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이미 언론들도 다루긴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교육의원 선거는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던 데다 추첨으로 결정된 투표용지 표기 순서에 따라 당선될만큼 선거의 의미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다행인 건 이 부분은 이미 올초에 문제점을 인지하고 법령이 수정되었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 (이럴 때 보면 국회의원들도 뭔가 하는구나 싶다. ㅋㅋ) 선관위에서 인터넷과 여러 매체를 통해 투표 방식에 대해 홍보하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띄었지만 최대한 많은 유권자들이 올바로 투표해야 의미가 있는 민주선거 방식을 생각했을 때 역시 1인8표제는 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퇴 후보에 대한 투표용지 변경 이슈의 경우 공직선거법에 그대로 둔다고 명시되어 있으니 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의 제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충분한 사전 공지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론 나름 투표 새내기(…)로서 불만인 점도 있었다. 6자리 x n명에 달하는 많은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 선관위 홈페이지에 개제된 정보는 재산신고액, 병역이나 전과 기록 말고는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선거공보물은 전교조나 4대강과 같은 초쟁점 현안만 아니라면 어차피 다 좋은 소리만 써놔서 큰 변별력이 없었다. 무상급식조차 단계적/부분적이냐 전면실시냐 정도의 차이였으니.

선거운동 방식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 내가 겪은 건 전체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긴 하지만, 학교 근처 식당에 갔는데 (내 투표지역과 상관 없는 건 제쳐두고라도) 선거운동원들이 돌아다니며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명함 나눠주는 방식은 맘에 안 들었다. 확성기 켜놓고 돌아다니면서 홍보하는 것도 그 사람이 후보로 나왔구나 하는 정도 말고는 오히려 소음 피해만 생기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로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 많은 곳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유권자들이 선거에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후보 별 정책과 공약, 그것의 실현 의지와 뒷받침할 능력, 그리고 신뢰성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보를 얻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약은 공보물에 써있다쳐도, 같은 공약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람 됨됨이를 봐야 하는데 선거운동기간 동안 이걸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좀 요령이나 정치적 배경지식이 있는—주로 20대 후반 ~ 30대 유권자들?—사람들은 인터넷으로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다 뒤져보기도 한다는데 정말 시간내서 하지 않으면 이것도 쉽지 않다.

어렸을 때 봤던 것처럼 학교 운동장 등에서 주말에 사람들 운집시켜놓고 공약 발표회 같은 걸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보가 실제로 말하는 어조와 태도부터 시작해서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로는 꽤나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TV토론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접근성은 좀더 좋아져야 할 것이다. 이번엔 NHN에서 선관위와 함께 사이트를 만들어 영상을 제공하였는데 Mac에서는 사실상 재생이 불가능했고,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방송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해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는 등 TV를 보지 않는 사람에겐 상당히 불편했다. 선거공보물에 후보자별로 공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하고, TV토론회의 접근성을 높이거나 공약발표회를 가지면 지금보다는 정보 접근성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뭐, 궁국적으로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리고 관련 시민단체 같은 것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공약 이행 여부를 임기 내내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공개적으로 평가되고 이를 통해 정치가들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면 좋겠다. 이번 선거 결과가 여당과 야당의 상호 견제로 나타난 만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자만하지 않고 국민들이 부여해준 권리를 바탕으로 본연의 감시 기능을 잘 수행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 또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가장 근본 원인인 소통의 부재1를 재연하지 않기를 바랄 뿐.

선거를 지켜보면서—좀 뜬금없는 이야기인데—이명박 요정설2이 정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세종시 원안/수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그 안들 자체는 각기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수정안은 그걸 추진하는 사람들을 (몇몇 직접 관련 경험에 의해) 도저히 잘할 것이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수정안에 반대한다고 하였고, 나는 이를 통해 일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어쩌면 정치에서는 더 중요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는 정치적 관념에 대한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잘 맞아떨어져 운이 좋은 경우겠지만) 내가 투표한 것이 선거 결과에 나타나는 것도 신기했고, 젊은층이나 네티즌들이 말로만 정치 욕하지 않고 실제 투표로서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됨과 함께 선거 결과를 통해 앞으로도 그러해야겠다는 의지를 이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 같아 꽤나 만족스러운 선거라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민주주의의 참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 개개인이 후보들에 대한 좀더 상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약과 신뢰성에 기반하여 소신 투표를 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1. 소통이라는 게 국민들의 모든 의견을 일일이 다 반영하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의견을 들어서 그것을 소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거기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IT기술과 소셜네트워킹의 흐름에 발맞추어 사이버 공간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유언비어가 국가의 통제가 아닌 커뮤니티 스스로의 자정 작용에 의해 걸러질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2. 정확한 시발점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풍자 만화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명박이 요정처럼 뾰로롱 나타나 사실 자기는 국민들에게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온 거라고 말하고 뾰로롱 사라지는 내용이다. (말로만 쓰니까 썰렁한데 실제로 보면 좀 웃기다.) 

2010/06/05 03:16 2010/06/05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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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와 경영

얼마 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용철 전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읽었다. 책 내용에 대해선 이미 인터넷에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으니 생략. 다만 글이 너무 세세한 사례 위주로 흐르다보니 중간 이후부터는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다.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은, 왜 그래야만 했느냐 하는 것이다. 뇌물 없이는 기업 활동이 불가능했던 것일까? 이건희 일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신화는 단지 시대적 상황에 잘 맞아떨어진 우연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많은 재물을 끌어모으고 자기 맘대로 회사를 휘두르는 이건희 일가의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삼성 같이 큰 기업일수록 더 많은 책임의식을 느끼고 더욱더 투명하게 경영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 정반대로 흐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난 그저 이건희 일가와 그 가신들에게 정말 그래서 행복하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의 행복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을 잘 경영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에서 나와야 할 텐데, 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암담하다.

나는 삼성의 비리와 뇌물 문제에도 염증을 느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어쨌든 지금의 삼성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앞으로의 삼성을 만들 사람들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말하듯 안타깝게도 지금의 삼성을 만든 사람들은 이익과 보상에서 많은 부분 제외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며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삼성에 가지 말라고 하면서 ‘피만 쪽쪽 빨린다’는 표현을 했는데, 소프트웨어 문화에서는 사람이 재산이기에 이런 인식이 퍼져서는 절대 우수한 인재가 삼성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이건희가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였다. 세계 전자시장의 트렌드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며 10년 후 삼성을 먹여살릴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소프트웨어 투자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물론 2008년 퇴진 당시 이야기했던 공공 이익 실현 어쩌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우리학교에 삼성전자에서 일하시다 이번에 석사 동기로 들어오신 분이 있다. 회사에서 확실히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분위기이긴 한데, 문제는 그걸 제대로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충 외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듯 삼성전자의 핵심 임원들은 대부분 하드웨어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다. 실제 물건이 만들어져야만 가치가 인정되는 세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사람 자체가 가치가 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같은 회사 내에서도 실적을 쌓기 위해 부서끼리 아이디어나 지식을 훔치는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윗선에서 이걸 제대로 판단·컨트롤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삼성이 바뀌면 우리나라가 바뀌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워낙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가진 회사기 때문에, 삼성이 제대로 하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삼성전자에 근무하셨던 분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신 것이기도 하겠으나, 내가 봐도 삼성이 제대로 하면 다른 기업들도 그러한 문화와 관행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삼성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와 친구들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는, 제대로 일하는 외국계 기업에 가서 엔지니어로서뿐만 아니라 매니저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총괄 담당 정도까지 올라서고 그런 사람들이 다시 국내 기업에 들어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문화를 아주 장기적으로(몇십년?)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영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요즘 나에게 경영 공부를 특히 강조하신다. 아버지는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서 온갖 실무 경험을 쌓으신 후 사장의 자리에 오르셨다. 수십억 수백억짜리 프로젝트가 아버지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수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의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월급만 받을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진 아버지가 얼마나 더 잘 하느냐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은 승진 외에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오너십을 가질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도 하셨었고, 오너십까진 아니더라도 단순히 엔지니어로서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경영을 통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규모의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라면서.

전문적인 기술로 먹고 사는 건 요즘같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선 잘 해봐야 10~20년이다. 그렇다면 그때그때 필요한 기술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가치와 이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능력, 곧 경영 능력이 중요하다. 헌데 경영만 알아가지고는 이렇게 전문화된 세상에서 각 전문가 집단을 설득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지역적 문화 특성, 전문가 집단 고유의 문화 특성을 알아야 하고 전문지식도 알아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참 어려운 것이, 전산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흥미 있는 일에 있어서는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을 만큼 열정을 쏟는다. (오픈소스가 어떻게 이만큼 발전했겠는가!) 하지만 많은 경우 같은 전산 분야 내에서도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는 일과 자기가 재미를 느끼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의 경영진은 이런 사람들이 가진 문화와 코드(소스코드 말고 ‘코드가 맞는다’할 때 그것)를 이해할 수 있어야 효과적으로 이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오신 동기 분이 이야기하신 경영하고는 조금 다른 출발점에서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결국 삼성전자는 아직 이러한 소프트웨어 경영 리더십이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소프트웨어와 경영 양쪽을 모두 겸비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아버지는 분야는 다르지만—사실 소프트웨어 공학의 많은 메타포가 건축에서 온 것이긴 하다—경영을 함께 알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가끔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그냥 외국으로 확 떠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 살아온 땅이고, 기왕이면 같은 성공을 하더라도 주변의 한국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2010/04/04 03:15 2010/04/0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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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회운동가로서 인간 예수가 당대의(그리고 현재의) 정치적·경제적(자본주의) 틀과 다른,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고 그것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 수난의 길이었음을 보여주는 책. 열두 제자들이 기대한 것과 예수님의 지향점 차이로 인한 갈등을 사회개혁(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하지만 너무나 강하고 확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 책을 쓴 김규항씨 본인조차 그러한 삶을 살 것인가,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부활의 과학적 신빙성이 예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수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사회에 잘 ‘적응’한 인텔리나 중산층들이 어떻게 보면 지배체제의 독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보수성을 띰을 나타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잘’ 사는 이상향을 좇기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음’을 주장하는데 김듀항은 그것에서 벗어나야 예수님이 전파한 가치를 따라 살게 됨을 역설한다.)

메마르고 품위 없이 사는 사람들을 사회에서는 교양없는 사람들로 간주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악다구니를 쓰지 않아도 되고 폭력의 현장에서 한발치 떨어져있을 수 있기에 그리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예수가 지적한 위선이자 그가 로마와만 대립한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바리사이들이나 기득권층과도 대립했던 이유라는 것이다.

나 자신 또한 한국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나의 순수함과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을 큰 어려움 없이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내가 만약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다면—그것이 신의 뜻이라 해도—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고 유대감 넘치는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온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처음엔 김규항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책만 재밌게 봤는데, 중간쯤 읽다가 저자 프로필을 보니 전형적인 좌파적 성향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와 같은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 사람 본인이 그런가 하는 점.) 흔히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반골의 성향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여태껏 인류가 겪어왔던 모든 사회 체제는 부조리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가 당시 기존의 정치적·경제적 개념과 사회적 관습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을 추구했음을, 예수가 지배체제로부터 사형 당한 이유를 보다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록 그가 자신이 주장하는(?) 삶대로 살고 있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자기라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엊그제 룸메이트가 소개해준 일본 SF애니메이션 ‘프리덤’을 보았다. 지구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인류는 달에 인공도시를 짓고 거주하게 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구가 푸르게 회복되고 살아남은 인류가 있음에도 도시의 운영자들은 시민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진실을 알려는 자들을 죽이거나 가둔다. 여기서 그 운영자들은 달에 도시를 만들 정도의 과학기술로 인해 지구를 잃어버릴 뻔했던 만큼, 시민들(인간들)이 다시 과학기술의 힘이 주어져도 평화롭게 살 것이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노라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견 그들의 주장이 이해되고 거기에 반기를 드는 젊은 주인공들이 ‘너무 어려서’ 인간에 대한 지나칠지도 모르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지구와 다시 왕래가 이루어졌을 때, 달의 도시가 더 이상 그곳의 인류에게 전부가 아니게 되었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기득권 때문에 지배체제로서의 저항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 애니에서는 그런 논리를 일부러 숨겨서 진부한 논리적 흐름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부식당에 있는 카페베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좀전에 근처 자리에 앉았던 어떤 여학생 둘의 대화가 생각난다. 한 명이 부모님과 전화하면서 마구 투정을 부리니까 다른 학생이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아버지 직장 이동 때문에 5명이 사는 90평짜리 집이 55평짜리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방이 너무 작아져서 싫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제시한 대안은 집 2개를 사서 터서 쓰자는 것인듯 했는데 그래봤자 방 크기는 똑같지 않냐는 것. 물어본 친구는 벙 쪄서 4인가족 기준이면 28평에서도 사는데 뭐 그걸 가지고 불평하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삶의 경제적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친구들 중에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별로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닌데, 그로 인해 인간의 가치 평가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예수가 부자더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일 것이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과 별개로,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이 단순히 사랑의 교리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대대손손 사회구조에 대해 왜,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잃어버리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방식으로 남겼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한때 무신론을 지지했을 때 바라보고 싶었던 예수의 모습이 이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은 실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2010/02/20 18:21 2010/02/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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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들은 이야기

블로그에 쓰기엔 조금 짧고, 트위터에 남기긴 길고, 구글버즈에만 남겨두자니 너무 전달범위가 좁고. 그래서 블로그에 쓴다.

NHN/KLDP 권순선님과 SPARCS 동아리 지원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술(…) 마시고 왔다.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다른 관점과 목적으로 한 얘기지만 결국 1337 파티에서 노정석님이 해주신 것과 비슷한 이야기. 대충 그맘때쯤의 세대가 우리 세대에게 불만이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실패할 것이나 기술적인 한계를 놓고 재지 말라. (특히 학생일 때) 실수하고 실패해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권한이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뭐가 되든 끝까지 삽질해봐라.”

동시에 카이스트가 등록금 정책 등으로 학생들에게 점점 학업 부담을 지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다. 이른바 자기 좋아하는 일에 미친 ‘또라이’들이 많이 나와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2010/02/12 01:34 2010/02/1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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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다. 목소리냐 문자냐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느냐, 말투나 어감, 맥락적 의미 등 많은 것이 하나의 표현 안에 녹아들어가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세련됨의 차이, 스스로의 인식 수준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의 의도와 본질이 표현 방식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컴퓨터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기반 기술을 구현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정보(의도)의 전달 여부는 항상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로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뭔가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는 걸 은연 중에 보이고 싶은 의도가 첨가된다든지, 컴플렉스를 상대방이 건드린 것에 대한 내재된 화의 분출이라든지, 상대방의 생각이 옳다는 건 알지만 질투가 난다든지 하는 다양한 심리가 겹쳐지면 이것이 표현을 왜곡시켜버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표현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직접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결과는 서로에게 남는 상처와 울분이며, 이것은 또다른 내재된 화의 원인이 된다.

대화는 상호소통, 상호교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대화이지만, 그것이 상대방과의 지위 고하와 상관 없이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옛날 사회에서는 그것이 권력으로 누를 수 있었기에 허용되었을지 몰라도, 경쟁이 심화되고 투명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설득의 방식이 설득 내용보다 더 중요해졌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표현이 왜곡될 때 나타나는 예로 자신만큼 상대방이 노력한 부분이나 역할에 대한 무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 자기도 말해놓고 차마 체면 때문에 바로 거두지는 못하지만 뒤에서는 후회할 수 있는 독설을 내뱉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가 한 말 중에(TED 강연 동영상 참고) “단원들의 눈이 반짝거리지 않으면 그것은 (리더인)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직업적인 전문성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고 구성원들이 이것에 따르게 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똑같은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득당했느냐에 따라 리더에 대한 평가와 감정은 완전히 반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마지못해라도, 어쩔 수 없이라도 명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인정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때에 따라서는 나의 의견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논리나 권위로 무장하여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보다는, 소위 핑계를 댈 수 있는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줘가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면 상대방이 보다 기분 좋게 동의하게 만들 수 있다.

나의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겪어봐야 하고, 그 와중에 오해도 받아보고 실수도 해보고 하면서 배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주로 IT 분야에서 감정이 별로 섞이지 않은 건조한 의사소통을 주로 해왔던 것 때문에 많은 부분을 배우고 또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내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 그러한 면을 이해하고 그때그때 맘에 안 들었던 부분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 방식의 차이에 의한 마찰보다는 그러한 차이를 배움으로써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여기에는 심리적 거리낌을 극복하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많이 느낀다. 우리는 논리적 인간이 아니라 감정적 인간이다. 처세술, 설득하기 등의 내용을 담은 많은 책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은 명확한 논리로 설득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해야 하는 일이다.

2010/01/26 04:53 2010/01/26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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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가끔 살다보면 무언가 내재된 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개선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말이다.

특히 이런 것은 어떤 직업적인 인간 관계보다는 가족 관계에서 나타나기 쉬운데, 이것은 상대방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깊고 미묘한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이미 너무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에 마음의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표면적 현상 이면에는 본인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각 단계에서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관계들이 있는데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경험의 기회를 갖지 못했거나 아니면 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legacy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한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모르거나 이성적으로는 알더라도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서로에게 투명한 상호교감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내재적 두려움이 겉으로는 화로 분출되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항상 완벽하게 투명할 수는 없고, 또한 완벽하게 상대방과 동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발생할 때 이것을 제때 제때 해소해야지,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폭발시켜버리면 상처만 남을 뿐 근본적인 해결에 다다를 수 없다. 그리고 모두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만, 그것이 순간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원인을 상대방이나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탓하지 않으며 외부 사물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과의 교류를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이유도 아마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현장에서 뛰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었던 사람이거나. 문제는 자기가 비록 그런 못난 면이 있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이것이 더 나아져야 하고 또한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유년기의 교육을 통해서 이런 부분이 극복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나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획일화시키는 측면이 있을지언정 최소한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 질서에서 윗세대가 아랫세대에 대해 삶의 경험에 의한 노하우와 가치를 전수하는 의무를 빼먹고 효에 대한 권리만 강조하게 되면 더욱 힘들어진다. 물론 아랫세대 또한 그러한 경험을 나누어줌에 감사하고 그에 걸맞는 예를 갖춰야 하겠지만, 이것이 상호교감을 통해 우러나오는 것이어야지 감정이 사라진 의무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을 받는 쪽조차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요즘 젊은 것들도 고생 좀 해봐야 해’라는 말도, 반드시 해야 할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옳은 말이지만, 단순히 자기가 고생해봤기 때문에 너희도 고생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인류가 발전해온 원동력은 문자와 언어에 의한 학습을 통해 앞선 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삽질은 하지 않는 것이 개인에게도, 인류 전체로 봐서도 더 좋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이미 그렇게 고정되어버린 사람들이라도, 음악이라든지 종교의 힘에 의해서라든지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라든지 하는 영적 치유를 통해서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상상과 그로 인해 유대가 사라지고 권리와 의무만이 남은 상황에서 탈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 혹은 ‘덜떨어졌다’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과정에서 습득해야 할 것을 주변 환경에 의해 습득하지 못한 것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내버려둬서는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동화시켜나갈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이 더욱 아름답게 가꿔지지 않을까.

2010/01/24 23:04 2010/01/2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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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같이 보려고 예약했으나 갑작스런 일정이 생겨서 함께 못 본 그분을 위해 아직까지 미루어왔던 포스팅. 하지만 사실 니들웍스 블로그에 써놓고 이미 트랙백 수십군데 뿌렸다는 거. ㅋㅋ 여기도 링크한다.

공학도의 눈으로 본 AVATAR 감상 후기

2010/01/22 02:38 2010/01/2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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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결산

개인 서버의 하드디스크 사망 조짐으로 인해 안 그래도 별러왔던 가상서버호스팅으로의 이전 작업을 하느라 이제서야 올리는 2009년 결산 포스팅. 시작은 역시 학업 이야기부터 해야 될 듯.

2009년 가을학기 결산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졸업 학기라서 신선놀음할 줄 알았더니, 웬걸, 특강 + 신종플루 크리로 인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던 학기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남은 게 많은 학기이기도 했다.

HSS362 Music Theory and Musical Composition II

제목은 뭔가 길지만 실제론 그냥 작곡 수업. 변계원 교수님이 담당하셨다.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수강신청 추첨할 때 5개쯤 찍어둔 교양 중에서 이것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다행히도 가장 듣고 싶었던 수업이긴 했다. (사실 졸업요건 채우는 건 이 한 과목으로 모두 충족되고, 나머지는 그냥 더 듣고 싶어서 들은 거였다.) 음의 간격(interval) 계산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자유곡 작곡에 이르는 과정을 한 학기로 압축하여, 중간고사 때까지는 화성학의 기초 부분을 다루고, 이후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작곡 기법들에 대해 배웠다.

나는 피아노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정식으로 배웠고(모두 개인레슨/체르니50 들어가자마자 그만둠), 이후로도 혼자 취미삼아 계속 쳐온 데다 직접 채보하거나 작곡한 곡들도 있었기 때문에 악보를 읽고 쓰는 것에 아주 익숙하여 상대적인 난이도는 가장 낮았던 과목이다. 앞부분의 화성학 기초는 예전에 배웠던 걸 복습하여 단단히 다진다는 느낌으로 했고 뒷부분은 이미 감으로 알고 있던 것들에 이름을 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가 모르거나 알아채지 못한 기법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걸 배울 때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것이…-_-)

하지만 이런 선행학습(?)이 잘 되어 있는 것과 좋은 곡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첫 번째 과제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 1번의 화성 구조를 그대로 쓰면서 창작 멜로디와 반주를 붙이는 것이었는데 화성 구조의 제약이 심하다보니(무엇보다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인 반복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 그 뒤로 나온 과제는 쇤베르크 등 20세기 초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12음계, 직접적인 멜로디 구성보다는 배경음과 분위기 조성용으로 많이 쓰이는 unsynchronized isomelody/isorythm을 활용하는 것 등이 있었다. 특히 12음계(무조음)는 우리가 듣는 음악 덕분에 우리 귀에 매우 익숙한 일반적인 화성 구조를 완전히 버리고 한 옥타브에 속하는 12개 음을 모두 똑같은 중요도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사상적으로는 매우 혁명적이었지만 그 소리까지는 아직 내 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작곡하는 나 자신 스스로도 매우 괴로웠다.;;

이 수업은 타지키스탄(Tajikistan)에서 유학온 친구이자 SPARCS 후배인 ‘달래’(원래 이름은 Daler Karimov이지만 편하게 이렇게 부른다. 물론 남자다 ㅋㅋ)와 함께 들었는데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이 친구가 지금은 전산 전공에 BEP 부전공을 하고 있지만, 고향에서는 원래 음악 전문 학교를 다녀서—구소련과 같은 공산정권 하에서 과학·수학이나 예술·체육 쪽 특기생들을 국가적으로 키우는 정책의 영향이 남아있었던 듯—이미 자기가 작곡한 곡도 몇 곡 있고 피아노도 꽤 잘 치는 편이다. 러시아어·타지키스탄어·영어·한국어·아랍어까지 구사하는 데다 태권도와 피아노도 수준급이고 생긴 것까지 잘생겨서(…) 완전 엄친아 같은 녀석으로, 나중에 고향에서 대통령 하고 싶다는 꿈이 있을 정도다. 아무튼 그전엔 인사만 하고 지내다가 이 수업을 통해 내가 작곡한 곡과 이 친구가 작곡한 곡을 서로 연주해주면서 기말고사 때 제출할 곡을 어떻게 쓸까 함께 고민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친구의 자작곡들은 자기네 전통 민요의 리듬과 화음이 살아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한국 올 때 악보를 거의 안 가져와서 아쉽다고 했다)

나는 기말곡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작곡한 Memories라는 피아노 독주곡을 메인 테마로 삼아 오케스트라(플룻, 바이올린 앙상블, 첼로 앙상블 추가)로 확장하고 수업 시간에 배운 몇 가지 기법들을 추가로 응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달래도 자기가 작곡했던 곡을 바탕으로 작업하였는데 전체적으론 괜찮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특유의 대담한 리듬과 중독성 있는 화성이 덜 느껴져서 살짝 아쉽기도 했다. 수업 초반에 교수님이 수강생이 너무 많자 잔뜩 겁을 주면서 다들 드랍시킨 덕분인지(?) 기말곡들은 다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 중에 표절을 의심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명백히 표절이 아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곡은 어느 00학번 전산과 분이 애니메이션 WALL·E를 보고 동영상과 맞추어 만든 Hold My Hand라는 곡이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멜로디와 반주이면서도 서글픈 느낌을 멜로디와 음색으로 잘 표현해냈고, 동영상과 함께 들어도 혹은 따로 음악만 들어도 잘 어울리고 언제나 공감가는 곡이다.

CS492 Probablistic Robotics

학부 지도교수님이신 김기응 교수님의 특강으로,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확률이론의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Bayes’ Rule을 바탕으로 Markov assumption 하에서 로봇이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에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 수업이다.

과제는 Microsoft Robotics Developer Studio를 이용해서 C# 언어로 수업 시간에 배운 몇 가지 주요 알고리즘들을 실제로 구현해보는 것들이었다. Occupancy grid mapping, Monte-carlo Localization, Grid-based SLAM까지 총 3가지가 나왔는데 두번째 과제를 하다가 신종플루에 걸리는 바람에 쭈우우욱 밀려서 마지막 과제는 결국 손도 못대고 말았다. orz

Robotics Lab 1: Occupancy Grid Mapping

첫번째 과제 완성된 장면.

말하자면 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 국방성에서 스탠포드, CMU, MIT 등 유수의 대학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DARPA Grand Challenge와 같은 자율적인 로봇 시스템을 구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비슷한 대회가 준비 중이며 우리 학교에서도 기계과 등과 협력하여 나갈 예정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링크한 글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컴퓨터 시스템을 자동차에 얹고 있는데, 이 수업을 들으니 그 이유를 알 만했다. 확률통계에 기반해 실제 세상을 모델링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다. 특히 SLAM과 같은 알고리즘을 제대로 돌리려면…-_-)

다른 것보다도 이 수업을 들으면서 좋았던 점은 선배들이 ‘전산과라면 확률통계하고 선형대수는 꼭 들어야지~’했던 말을 졸업할 때까지 전혀 실감할 수 없었는데 이 수업을 통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확률통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수식이 난무하는 강의자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 근본은 아주 간단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그것을 이용해서 실제 세상을 모델링하는 방법을 맛볼 수 있었다.

종강할 때 내가 교수님한테 하나 건의했던 건, 학부 2~3학년 수준에서 들을 수 있는 전공선택 정도로 확률통계를 전산학에서 어떻게 응용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해달라는 것이었다. 선형대수와 확률통계가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지만 지금의 학부 전산학 커리큘럼에서는 그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졸업할 때 쯤 되면 다 까먹어버린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는 전산학도를 위한 수학 이런 과목을 만든다고는 하는데, 이러한 건의가 잘 받아들여져서 전산학과 학생들이 수학이 모자라다는 평가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CS492 Distributed Algorithms & Systems

위의 과목이 확률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 과목은 선형대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우길(?) 수 있을 것이다. ㅋㅋ 네트워크 분야를 연구하시지만 안식년에 미국의 ACCI 커리큘럼을 보고 오신 문수복 교수님이 우리학교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개설한 과목이다. 수업 내용은 분산 시스템은 어떤 특징이 있고 이것을 학문적으로는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하는지, 관련한 알고리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과제는 Hadoop MapReduce 프레임워크를 이용해 PageRank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기말 프로젝트는 Hadoop을 이용해서, 혹은 Hadoop을 고쳐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어내거나, 대용량 처리를 도와주는 무언가를 제안하여 직접 구현하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3D 게임용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그래픽카드의 핵심부품인 GPU를 분산처리와 결합시켜보자는 것이 아이디어였다. 3D 오브젝트들과 텍스처 등을 실제 2D 모니터 화면에 뿌려주는 과정은 엄청난 양의 행렬 연산을 필요로 하는데 GPU는 바로 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행렬 연산은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앞의 PageRank도 마찬가지) 이것을 임의의 대용량 크기로 확장해서 분산처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scalability가 뛰어난 Hadoop으로 행렬 곱셈을 분산처리하되 각 노드에 GPU를 꽂아 개별 노드의 연산을 가속시켜보자는 것이다.

원래는 행렬곱셈의 분산처리 과정은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Apache Hama 프로젝트(NHN에서 일하는 어떤 분이 오픈소스로 만든 것이다)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HBase를 이용하기 때문에 성능이 매우 떨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규모로 실험해볼 수가 없어서 결국 직접 짜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날린 시간을 생각하면…ㅠ_ㅠ) 다행히 실험결과 GPU를 이용해 가속 처리를 하였을 때 확연한 성능 향상이 있음이 입증되었다. 인턴으로 졸업연구 대체해버리긴 했지만 약간만 시간을 더 들여 다듬었으면 이걸로 졸업논문 써도 될 뻔했다.;; (실험의 재연 여부를 확실히 하고 통계 처리를 보강한다든지, 과제로 구현했던 PageRank를 이 시스템 기반으로 다시 돌리면 어떤 성능 향상이 있는지 조사한다든지 등등)

다만 현재 대용량 처리를 MapReduce 방식으로 구현할 때 대부분 가상화 기술 기반의 클라우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GPU를 꽂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계산 전용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경우라면 굳이 가상화 기술을 사용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에 각 컴퓨터마다 20만원대 그래픽카드만 한장씩 꽂아주어도 엄청난 성능 향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가격대 성능비로는 최강에 가깝다. 사실 진정한 최강은 CELL 프로세서를 탑재한 SONY의 Play Station 3로, 미 국방성에서도 수십~수백대를 대량 구입하여 계산용으로 활용한다. -_-)

NexR에서의 인턴 경험과 더불어 이 수업을 통해 Hadoop cluster를 운영하고 빡세게 MapReduce 프로그래밍을 해본 것은 지금 뜨고 있는 최신 기술을 습득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수업이었다.

CS489 컴퓨터 윤리와 사회 문제

이 과목은 이제 연구보다는 사회와 정치(?)에 좀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 김진형 교수님이 매년 계속 열어오고 계시다. 전공이라기보다는 교양 같은 수업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선 그 어떤 전공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그런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업은 초반에는 교수님이 소개해주시다가 후반엔 학생 발표로만 이루어지는데, 전산학이라는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우리는 이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 다룬다.

4월에 개정된 저작권법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흡수하게 되면서 공정 이용에 대한 조항 때문에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 점이라든지,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 온 ActiveX와 웹표준 문제, 한국-인도 CEPA(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에 의한 인도의 고급 IT 인력 수입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 의료법에 의해 의료IT시장이 제약받고 있는 문제 등 아주 현실적인 것부터 게임 중독, 프라이버시 등 고전적인 문제와 위치기반서비스나 스마트그리드처럼 최근 기술의 흐름 등 일부러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챙겨보기 힘든 다양한 주제를 서로 토론하게 해주었다. 수강생이 많아 개개인의 열정적인 참여가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선 충분하지 않았나 한다.

나는 블로그와 RSS 구독, 미투데이·트위터 갈은 SNS를 사용하면서 온라인 인맥을 어느 정도 형성해놨기 때문에 몇 가지 주제를 제외하곤 사실 이미 대충 들어본 것들이었고 이런 식으로 각각에 대해 비판하거나 긍정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대부분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수업이 더욱 값진 것 같다.

Personal Insight

  • 웹 기술에 대한 담론이 웹표준화에서 모바일웹으로 급격하게 이동한 해였다. 특히 11월 말 출시된 아이폰이 그 기폭제 역할을 했고 2010년은 본격적인 각축전이 벌어지는 원년이 될 것이다.
    • 공공부문의 웹표준화는 이제 초기 장벽을 넘은 듯하다.
    • 모바일웹으로 인해 웹표준화와 접근성에 대한 압력은 줄어들지 않고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젠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 손에 쥐어진 기계를 가지고 하는 일이 되었다)
    • 인터넷뱅킹은 보안에 대한 관의 지나친 통제 의지와 닫힌 생태계를 발판으로 하는 기업들 때문에 모바일에서도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 Python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대중음악의 다양성이 인정받았다. 내가 대중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거나 하진 않지만, 장기하 그룹이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기억해둘 만한 일이다.
  • 소녀시대를 위시한 걸그룹들의 대약진. 관심 없는 나조차 알게 되어버리는 매스미디어의 세례.
  • 지구온난화의 (체감할 수 있는) 첫번째 경고: 2009년 겨울의 전북반구적 이례적 한파와 폭설.
  • TV 프로그램의 소비 방식 변화
    • TV를 생방송으로 챙겨볼 수 없는 생활 패턴에 컴퓨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은 20대는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받아서 본다. 저작권 단속을 하기보다는 이것을 적절한 가격에 양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eBook의 접근성 향상. 아이폰 효과?
  • 텍스트큐브는 이제 블로그로서의 기능은 다 갖추었다. 내부 구조를 갈아엎는 것 말고 또 뭐가 남아있을까?
    • 아이폰을 시작으로 위치기반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구글맵 프로젝트가 1년 넘게 지나서야 빛을 볼 듯.
  • 아이폰 앱 개발은 뭐가 되었든 일단 배워놓고 보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한해를 총정리하면 학업과 인턴을 통해 많은 것을 남기고 성장할 수 있었다면, 2008년 말에 계약했던 책 집필 작업이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기술적으로는 Python/Django와 Eclipse/Java/Hadoop이라는 큰 두 줄기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익힌 한 해였다. 물론 언제나 공부할 여지는 남아있게 마련이지만. 또한 인간관계도 인턴과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나름 회사에서 반년 가량 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선후배 등으로 새롭고 넓게 확장되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다.

앞으로는 여러 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극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문적으로 전산을 다루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2010년 한 해 또한 기대된다.

2010/01/11 03:31 2010/01/11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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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새내기 같은 반이었다가 실내악 앙상블을 들으며 피아노 4-hands 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었던 진혁이 형과 함께 장영주(사라 장)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을 보고왔다. 제대로 된 클래식 공연은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진혁이 형은 이런저런 일로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자로 서본 적도 있을 정도지만 난 오늘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Op.108), 테오파니디스의 판타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였다. 피아니스트로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 술친구였다는 앤드루 본 오이엔이 함께 하였다. 위의 곡들 중 앞의 둘을 첫번째 세션에, 뒤의 둘을 두번째 세션에 배치하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 진혁이 형과 나의 공통된 평가는 브람스를 너무 얌전하게 갔다는 것. 나는 뭔가 표현이 덜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형은 터져줘야 할 곳에서 안 터져주고 너무 예쁘게(?) 연주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후반부의 프랑크 소나타는 익숙한 듯 풍부하게 연주하였다는 평이 나왔다.

두번째 세션에서 판타지 곡이 끝나고 박수를 쳐야 하는데 피아니스트와 장영주가 그냥 바로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들 프랑크 소나타의 첫 악장 끝난 것이 판타지 곡의 끝이라고 헷갈렸는지 이때 박수가 터지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는 실내악 앙상블 들을 때 오케스트라 악장을 하던 경곽 18기 선배가 연습·연주하는 걸 한 학기 내내 들었던 덕분에 프랑크 소나타 3악장은 익숙했는데, 나중에 3악장 들어가고 나서야 ‘응? 언제부터 프랑크 소나타였지’ 했을 정도였으니까…-_-;;;;

앵콜로 4곡 정도를 했는데, 여기에선 대중들에게 친숙한 클래식 곡들을 들려주었다. 사랑의 인사라든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마지막 악장 같은 것들이었다. 이때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기보다는 친숙하고 음악 좀 배웠다면 한번쯤 연주도 해봤을 법한 곡을 대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특히 현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도 현을 끝까지 사용하면서 가늘고 일정한 음을 내는 기술이 놀라웠다. 역시 엄청난 연습의 결과겠지.

요즘 피아노도 별로 못 치고 있어서 실력이 줄까봐 걱정될 정도인데, 프로급은 아니어도 적어도 (클래식 덕후가 아닌--) 남이 듣기에 적당히 들을 만큼은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나름의 레퍼토리를 갖춰 연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슬슬 로보틱스 플젝과 시험공부를 시작해야겠다… ㅠ

2009/12/13 00:14 2009/12/1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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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기하의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드라마콘서트를 보러갔다왔다. 무려 전석매진될만큼 인기있는 공연이었지만 그분이 미리미리 예매해둔 덕분에 편안하게 가서 볼 수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포스터, 티켓 및 시디

공연 포스터, 티켓, 1집 음반

공연 시작이 7시였는데 명동에서 5시에 만나 저녁 먹고 남산예술센터(작년 이맘때쯤 대안언어축제 & P-CAMP 참가한답시고 지나가봤던 곳이라 위치는 잘 알고 있었음)로 가기로 했는데, 다음지도에서 추천해준 지하철 예상 소요 시간만 달랑 보고 갔다가 늦어버리는 바람에 저녁을 좀 허겁지겁먹어야했다.;; 어쨌든 주말 저녁 명동 거리의 살인적인 인파(…)를 뚩고 무사히 늦지 않게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표를 받고 미미시스터즈 달력을 사면 나중에 도장 찍어준다는 말에 달력도 사고 막상 예습해가야 했던 나는 사실 장기하 음반도 없었던지라 급히(?) 사고(…) 어쩌구 한 다음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연장은 규모가 아주 큰 편은 아니었는데, 원래 연극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그렇다고 한다. 앞뒤 좌석의 높이차가 커서 어느 자리에서나 거의 시야 방해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 자리는 왼편 입구를 따라 들어가 가운데블록의 중간 통로쪽이었다.

미미시스터즈 2010년 달력

미미시스터즈 2010년 달력

공연은 드라마콘서트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드라마나 연극적 요소가 중간중간 들어있긴 했지만(장기하와 똑같이 생긴 게으름뱅이는 누구였을까 궁금하다 ㅋㅋ) 이들이 강조되기 보다는 1집에 나온 곡들을 이용한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 영상미디어의 활용이 돋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불륜드라마’의 전형적인 삼각관계 폭로 장면을 보여주다가 세번째쯤 보여주고 나서 미미시스터즈와 실제 장기하가 비슷한 장면을 연기하며 노래와 함께 풀어내기도 했다. 시작과 끝에선 어느 대형전자쇼핑몰의 카트에 담긴 시선이 어떤 TV 속의 남자한테 다가가 그 남자가 마치 객석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아주 코믹하게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게 만들면서 공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장치 역시 신선했다.

장기하의 노랫말들을 보면 정말 ‘별일 없이 산다’는 제목처럼 별볼일 없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사나 시를 보면 뭔가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을지 유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겨냥하여 자꾸 음미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장기하 특유의 목소리 색깔과 그냥 팝도 아니고 락이나 메탈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현대적 folk라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 어우러져 뭔가 새로운 것을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채워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뷔 후 갑작스런 인기몰이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장기하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컴백하게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또한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장기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엔 무엇이 깔려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미미시스터즈가 약방의 감초처럼 받쳐주듯, 장기하의 매력 또한 쭈욱 이어져나가길.

2009/12/12 22:17 2009/12/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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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투데이와 트위터에 실컷 얘기해놔서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신종플루에 걸렸다가 현재 회복되고 자택격리가 풀려 학교로 돌아온 상태다. 발병은 지난 주 토요일 오후였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 오전이었으며, 확진검사 결과가 나온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엊그제 금요일이었다. 내 생각에 신종플루에 걸린 가장 큰 원인은 봄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전 포스팅의 바탕이 된 PageRank 프로젝트를 하면서 밤을 많이 새면서 신체 리듬이 깨진 게 영향을 준 듯하다.

어디서 감염되었는지는 대략 예상하건대 학교 내 감염 or 금요일 서울 강남 쪽으로 외출했을 때 만원 지하철 탄 것 or 토요일 서울 신촌 외출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신종플루의 잠복기가 하루에서 일주일 정도라고 하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금요일에 감염되어 다음날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주변에 나 말고도 스팍스 동아리에만 확진 환자가 3명 이상 존재하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주변에 아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사람마다 증상이 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같은 경우는 목이 살짝 간질간질하다가 나는 잔기침이 초반에 살짝 있었고 거의 열만 났는데 병원에서 측정했을 때 열은 38도로 기록되었다. 영양수액을 맞고 주사로 약을 투입한 후 감기약과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하면서부터는 감기약 약발이 받는 동안은 열이 어느 정도 내리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다음 복용 전까지는 계속 열이 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타미플루 자체는 항바이러스제라서 증세 자체와는 별 관련이 없다) 병원 약 먹는 동안은 기침이나 콧물 등 일반적인 감기 증세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 몇 번 독감 걸려본 경험에 의하면 독감보다 강도는 훨씬 약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온몸에 열이 상당한 정도로 지속되었기 때문인지 에너지 소모가 상당해서 부모님이 얼굴 살 빠졌다고 좋아하실(?) 정도였다; ㅋㅋ

나는 웬만해선 감기 걸려도 입맛이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타미플루의 영향인지 이번에는 입맛이 떨어져서 좀 고생했다. 특히 타미플루 설명서에 ‘음식물 섭취와 관계 없이 복용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서 빈속에 먹었다가 다음날 속이 메스꺼워서 죽는 줄 알았다;; 보통 건강한 성인의 경우 타미플루에 의한 영향은 복용 하루 정도 지난 후에 나타나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부작용이 심한 약이라고 경계하는 글들이 꽤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큰 문제 없을 것 같고, 그 부작용보다 신종플루든 독감이든 빨리 낫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며칠 동안 집에서만 계속 지내다보니 공기가 답답했던 것(어머니가 환기를 자주 시키는 편임에도 불구하고)과 주로 누워있다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허리가 아팠다는 점이다.

우리 집에서는 옛날에 간호사 근무 경험을 가진 막내이모의 비법(?)으로 감기에 걸리면 타이레놀과 쌍화탕을 함께 먹는데, 일단 이 방법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처음 증세가 나타난 토요일에도 이 방법으로 버텼고, 타이플루 복용이 끝난 다음날인 금요일에 잠시 감기 기운이 돌아서 뜨끈한 물로 샤워하고 이렇게 약을 먹은 후 잤더니 말끔히 회복되었다. 토요일에는 일부러 아버지와 함께 바깥 바람을 쐬러 시화호 상태습지공원에 갔다가 소래포구 어시장 구경을 했다. 오히려 그랬더니 집에만 있는 것보다 더 기운차게 회복된 것 같은데, 주변 감염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간중간 맑은 공기를 쐬러 외출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확률로보틱스 프로젝트 1개를 째고 작곡과제 1개를 째고 컴윤리 과제 1개를 째고 일주일치 수업을 몽땅 쨌다는 것. 수업에 빠진 거야 공결처리해준다지만 말이다.;; (다행히 이번 주 동안 새로 나온 과제는 없어보이는데… 잘 확인해봐야…으음-_-) 분산처리특강은 다행히 하루 휴강했기 때문에 진도 따라가는 건 별 문제 없을 것 같으나 확률로보틱스가 살짝 안드로메다로 가있을 것 같다. 작곡수업은 앞뒤 진도 의존성이 별로 없는 개별 토픽들을 다루고 있어서 수업자료만 보고 혼자 공부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회사에다가는 이메일로 알려서 그냥 일주일을 통째로 쉬어버렸다.

학교에 알린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는데 포탈에 공지 올라온 것을 보니 건강관리실을 주말에도 운영하고 있어서 일요일에 바로 연락해도 되었을 것이다. 공결 처리 및 의료상조회에 의한 병원비 보전 등을 처리하기 위해 처방전 또는 약 포장지(특히 타미플루) 및 영수증 등을 나중에 제출하라고 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학교 특성상 원래 의심환자만 발생해도 룸메이트까지 몽땅 자택격리시켜버리는데 현재 내 룸메인 맆군의 경우는 ACM ICPC 서울대회 출전 관계로 내 발병 3일 전부터 아예 서울로 올라가버려 나와의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격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늘어서인지 오늘부터 룸메이트는 마스크 착용 등의 감염 예방 수칙만 지키는 것으로 조건이 완화되었다.

지금은 신종플루 확산이 진정세에 접어든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뉴스에는 북반구 몇몇 지역에서 정점으로 추측된다고는 하더만), 의심증세가 발생하면 주말인 경우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을 아침 일찍 찾아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경우 수지삼성병원을 이용했는데, 근처 약국의 타미플루 비축분과 확진검사 키트가 준비된 수량이 많지 않아서, 내 다음 다음 순서까지만 제대로 진료받고 그 뒤로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평일에는 아마 매일 또는 며칠 간격으로 계속 보충할테니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다. 의사의 처방은 감기약과 타미플루, 체력이 떨어진 경우를 위한 영양수액(이건 보험처리가 안 됨)과 주사약이었고 고기 등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하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은 일주일 간의 가을 방학이 끝났다. 주변에서는 ‘아, 차라리 나도 신종플루 걸려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던데, 그래도 아픈 건 괴롭다. -_-; 특히 이번 신종플루는 (고위험군 아닌 건강한 사람의 경우) 증세 자체보다도 체력 소모가 많은 것 같다.

한 가지, 신종플루 덕분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은 오히려 좋았다. 물론 가족들에게 옮기게 되면 안 좋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까지 아무 영향 없고 물컵과 수건 등을 따로 사용한 덕분인지 잠깐 발열증세가 있었던 형도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스트레칭하고 신체를 이용한 놀이(딱히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다리 서로 걸고 발목으로 씨름하여 넘어뜨리기라든지 등등)도 오랜만에 하면서 온가족이 함께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참 즐겁게 놀다가, 이렇게 같이 웃어본 게 얼마만이지- 하면서 신종플루라는 특수 상황을 통해서야 이런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나서 살짝 서글퍼졌다.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은 카이스트가 대전에 있지만 않으면 집에서 통학했으면 좋겠다는 건데 학교 특성상 대전에 살아도 그건 좀 힘들 것 같고… 아무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안타깝다.

ps. 학교에 돌아와서 얘기를 들었는데, PageRank 프로젝트 후 수강생들 중에서 신종플루 관련으로 격리된 학생이 나 말고 2명이나 더 있단다. (그래서 휴강한 거라고…) 역시 그 프로젝트 빡세긴 빡셌던 듯. orz

2009/11/15 21:07 2009/11/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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